감정의 획일화와 정신병자
[최초 작성일자 : 2005-03-14]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규격품부터 시작해서 건축물의 모양은 물론이고, 사람의 생김새나 심지어는 생각까지 표준화하는 세상에서 그 표준에 이질적이 되면 소외와 다굴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상황이니 1990년대를 지배한 사상인 "개성-튀고 싶다"가 나온 것은 그다지 이상한 현상이 아니리라. 그리고 지금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개성"을 넘어 지금은 자기만족 차원에서의 "다양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상인 "좌파"가, 그리고 "중도"가 전통적인 우파와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세상인 지금에 와서도 획일화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획일화 이다.
이 말만 보고는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웃기는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을 보면 무조건 웃어야 하고, 슬프거나 감동적인 것을 보면 무조건 울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획일화된 감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타인이나 소속집단에 의해 배척과 다굴을 당하게 되며, 심지어는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획일화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일단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 "감정이 메마르다"는 비난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분열증 환자(전자의 연장)나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뒷배경이 수상한 자 또는 간첩(후자의 연장) 등의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내가 우니 너도 울어라, 안 그러면 사람취급 안해주겠다"라는 것이다.
대개 감정의 획일화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대개 특정 대상에 대한 표준화된 감정에 휩쓸려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개그물이나 감동물을 보면서 표준화된 감정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또는 전혀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자유 또한 있다.
까고 말해, 경쾌한 락 음악을 들으면서도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강요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의 폐해가 아닐까.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규격품부터 시작해서 건축물의 모양은 물론이고, 사람의 생김새나 심지어는 생각까지 표준화하는 세상에서 그 표준에 이질적이 되면 소외와 다굴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상황이니 1990년대를 지배한 사상인 "개성-튀고 싶다"가 나온 것은 그다지 이상한 현상이 아니리라. 그리고 지금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개성"을 넘어 지금은 자기만족 차원에서의 "다양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상인 "좌파"가, 그리고 "중도"가 전통적인 우파와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세상인 지금에 와서도 획일화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획일화 이다.
이 말만 보고는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웃기는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을 보면 무조건 웃어야 하고, 슬프거나 감동적인 것을 보면 무조건 울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획일화된 감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타인이나 소속집단에 의해 배척과 다굴을 당하게 되며, 심지어는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획일화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일단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 "감정이 메마르다"는 비난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분열증 환자(전자의 연장)나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뒷배경이 수상한 자 또는 간첩(후자의 연장) 등의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내가 우니 너도 울어라, 안 그러면 사람취급 안해주겠다"라는 것이다.
대개 감정의 획일화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대개 특정 대상에 대한 표준화된 감정에 휩쓸려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개그물이나 감동물을 보면서 표준화된 감정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또는 전혀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자유 또한 있다.
까고 말해, 경쾌한 락 음악을 들으면서도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강요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의 폐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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