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훈련과 '나 자신'의 소중함
[최초 작성일자 : 2005-02-17]
성공하기 위해서, 속세의 헛된 망령을 떨어내고 진정한 사람이 되려면 이따금씩 나 자신을 이기라고 한다. '극기 훈련'이라는 말도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생긴 말이리라. 나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가끔가다 정신적인) 고통의 수반을 절대시하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을 인생의 패배자 또는 비인간(非人間)으로 취급하기 십상이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나 자신'이란 '헛된 욕망에 물든 나약한 정신상태'를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을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 이 아닌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다. '나 자신'과 싸울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육체의 기능이 치사할 정도로 상실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 때까지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인 '나 자신'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배우고 경험해서 얻은 데이터야 망각해서 잃어버릴 지언정,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포맷하거나 기변(機變)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야 다르겠지만, 최소한 그것이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은 최고의 가치이자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 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이나 컴퓨터나 움직일 수 없다.)
'극기'라는 표현대로 외부적인 힘이 '나 자신'을 이긴다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이기려고 하는 상대는 결국, '나 자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하려고 할 것이다.
그 상대의 정체는 아무래도 '나 자신'을 죽거나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여러가지 요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뿐.
극기 훈련장으로 가서 엄청나게 힘든 '극기 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을 보자. 개중에는 '나 자신'을 이겨내고 새 인간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훈련생이나 조교들이나 과연 그들은 '나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극기 훈련'을 길더라도 '나약해 보이는 훈련생들의 육체와 정신을 조교들 취향이나 입맛에 맛게 세팅하는 과정'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것이다. (그것을 upgrade라고 오해하지 말라!)
성공하기 위해서, 속세의 헛된 망령을 떨어내고 진정한 사람이 되려면 이따금씩 나 자신을 이기라고 한다. '극기 훈련'이라는 말도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생긴 말이리라. 나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가끔가다 정신적인) 고통의 수반을 절대시하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을 인생의 패배자 또는 비인간(非人間)으로 취급하기 십상이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나 자신'이란 '헛된 욕망에 물든 나약한 정신상태'를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을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 이 아닌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다. '나 자신'과 싸울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육체의 기능이 치사할 정도로 상실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 때까지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인 '나 자신'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배우고 경험해서 얻은 데이터야 망각해서 잃어버릴 지언정,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포맷하거나 기변(機變)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야 다르겠지만, 최소한 그것이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은 최고의 가치이자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 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이나 컴퓨터나 움직일 수 없다.)
'극기'라는 표현대로 외부적인 힘이 '나 자신'을 이긴다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이기려고 하는 상대는 결국, '나 자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하려고 할 것이다.
그 상대의 정체는 아무래도 '나 자신'을 죽거나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여러가지 요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뿐.
극기 훈련장으로 가서 엄청나게 힘든 '극기 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을 보자. 개중에는 '나 자신'을 이겨내고 새 인간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훈련생이나 조교들이나 과연 그들은 '나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극기 훈련'을 길더라도 '나약해 보이는 훈련생들의 육체와 정신을 조교들 취향이나 입맛에 맛게 세팅하는 과정'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것이다. (그것을 upgrade라고 오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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