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 ‘가위질’은 가고 ‘검열시비’는 남고
심층진단 - ‘가위질’은 가고 ‘검열시비’는 남고
이정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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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영화진흥법(구 영화법)에 규정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1916년부터 80년 동안 지속되어온 영화 검열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위헌 판결에 대해 정부·여성계·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은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냈으며 검열 폐지의 대안에 대해서도 매우 현격한 견해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위헌 판결 이후에도 위한 판결의 정신은 구현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영화 검열의 본질과 실상, 위헌 판정의 의미, 그리고 검열 철폐의 대안 등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화 검열의 본질과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려면 반드시 문화체육부 장관에 의해 위원이 임명되는 공연윤리위원회(약칭 공륜)의 심의를 사전에 받아야 하고, 아니면 처벌을 받으며, 심지어 공륜이 삭제권까지 갖는, 그래서 의사표현과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영화관련법 규정은 위헌이다.” 여기서 헌법재판소가 문제로 삼는 것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심의의 주체에 관한 것이며 또 하나는 심의의 방법이다. 곧 심의의 주체인 공륜이 사실상의 정부기관이라는 점, 그리고 심의 방법이 사실상 삭제를 하는 검열제라는 점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간 공륜이나 정부에서는 공륜이 민간단체이며 현행 영화심의가 검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영화검열이란 국가기구가 영화의 상영 여부를 허가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에서 영화 검열이 시행된 것은 1916년부터인데 이때는 아직 한국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 검열의 목적은 민족정신을 억누르고 영화산업을 통제·관리하는 것이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이 검열을 했으며 정부수립 후에는 문교부가 검열을 했다. 그러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영화령을 본떠 영화법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영화 검열은 법적 보장을 받게 되었다. 유신 이후인 1976년 박정희 정권은 문화·예술부문에 대한 통제의 효율화를 위해 영화·연극 등 각 장르별로 나뉘어 있던 검열기관을 공륜이라는 단일조직으로 통합했다. 이때부터 공륜에 의한 영화검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84년 영화법 5차 개정 때 검열이란 용어가 심의로 바뀌었으나 내용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국의 영화 검열은 체제안보와 영화산업의 관리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그 동안 공륜에 의한 검열은 선진국 영화심의의 목적인 청소년관객 보호는 제쳐두고 체제도전적인 영화 내지는 장면의 삭제에 치우쳐졌다. 농촌현실을 고발한 소형영화 《파랑새》(1986),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1989), 노동조합 결성을 소재로 한 소형영화 《파업전야》(1990), 참교육 운동을 다룬 소형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1992)가 검열 미필로 제작자가 인신구속을 당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 《부활의 노래》(1989)나 노동현장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 《구로아리랑》(1990) 등의 경우 20장면 이상이 삭제당해 이야기의 연결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둠의 자식들 2》(1983)는 제목이 어둡다는 이유로 《바보선언》으로 제목을 바꾸었으며 《칠수와 만수》(1988)의 경우는 길거리에 연탄쓰레기가 나오는 장면이 삭제되었다. 이러한 예들은 너무나 많아 오히려 삭제되지 않은 사례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검열이 한국영화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상상력의 제약이었다. 처음부터 검열의 기준과 관행 등을 고려해 문제가 있는 영화는 아예 제작조차 하지 않고 제작과정에서도 스스로 표현력의 한계를 설정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결국 예술의 본질인 상상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한국영화는 정체에 빠져 예술적 실험이나 주제의 모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동안 영화 창작인들은 영화검열을 한국영화의 공적(公敵) 1호로 지목하고 그 위헌성을 지적하며 철폐를 주장해왔다. 그 결과 1987년에는 시나리오 사전심사제가 폐지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1988년부터 영화계는 영화법 개정운동을 벌이면서 공륜에 의한 검열제를 폐지하고 민간자율기구의 등급심사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해왔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영상산업의 발전이 시대적인 화두로 등장하면서 1996년 영화법이 폐지되고 영화진흥법이 제정되었으나 검열제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새 법이 시행된 지 3개월도 못 되어 영화 검열이 위헌으로 판정됨에 따라 재개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이 시점부터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우선 위헌 판결에 대한 입장이 이해당사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는 이 결정을 시기상조라고 비난하고 일부 언론과 시만단체는 유해 영상물의 범람을 우려하기도 했으며 영화 창작자들은 민간자율기구에 의한 완전등급심사제 실시를 주장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 판결의 정신과 그 의의를 재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검열 위헌 판결은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 각 부분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신장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영화검열이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반(反)하는 판정은 민주주의의 일반 상식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당연한 헌법정신이 권위주의의 유산, 행정편의주의, 보수적인 가치관 등에 의해 무시되어왔음이 사실이다. 1996년 10월 31일에는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음반 사전심의 또한 위헌 판결을 받았다. 비디오물의 경우 위헌제청건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역시 위헌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점들과 관련해 위헌판결의 의의를 확장해본다면, 그 동안 관 주도로 이루어져온 영화 및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이 심의의 본래 목적인 청소년층의 보호에 실효성이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간의 영화검열은 한국 영화에는 엄격했지만 외화에는 그렇지 않았다. 외화의 경우 일부 문제 장면만 삭제하고 미성년자 관람가로 판정해주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청소년관객 보호라는 취지가 전혀 살아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실례로 1994년에 불거진 공륜 직원과 수입사와 극장주 간의 뇌물수수 사건은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수십 년동안 뿌리박힌 관행을 뒤집는 것이기에 영화계 및 관련당사자들 사이의 다소간의 혼란은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검열 이후의 혼란과 그에 대한 대안까지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일부를 다시 인용해보겠다. “심의기관에서 허가 절차를 통해 영화의 상영 여부를 종국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검열에 해당하나, 예컨대 영화의 상영으로 인한 실정법 위반의 가능성을 사전에 막고, 청소년에 대한 상영이 부적절할 경우 이를 유통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미리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다. 설사 등급 심사를 받지 아니한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때에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경우에도 검열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여기서의 상영금지는 심의의 결과가 아니고 단지 일괄적인 등급 심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조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위 판결문을 세심히 살펴보면 공륜에 의한 영화 검열의 대안으로서 민간기구에 의한 완전 등급 심사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영화계가 10년간 주장해오던 바이고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시행하던 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민간기구의 구성방법과 등급의 분류방법이다. 위헌 결정 이후 영화계와 정부나 사회단체 등 관련당사자들은 위의 두 문제를 두고 직·간접적으로 논쟁을 벌였지만 아직 뚜렷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는 것은 정부의 견해와 영화감독협회·한국영화연구소 등이 공동 결성한 ‘완전 등급 분류를 위한 범영화인 준비기구’의 의견이다. 정부의 견해는 개정 영화진흥법안에 반영되어있는데, 먼저 기구의 명칭을 문화예술진흥협의회로 하고 예술원이 위원 구성 권한을 가지며, 등급을 5단계로 나누되 등급외 등급을 두어 등급외 판정을 받는 경우 상영을 금지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반면 범영화인준비기구의 안은 먼저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개편하고 그 산하에 등급분류위원회를 두며, 영화관련 단체의 추천을 받아 국회의 위촉으로 위원 구성을 하며, 등급은 5단계로 나누되 제한상영가를 두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안은 등급심사기구의 구성에서도 다르지만 상영 금지와 다름 없는 ‘등급외 등급’(정부)과, 광고를 할 수는 없으나 성인전용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 ‘제한상영가’(준비기구)를 둔 점에서 특히 대립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성인전용관의 허용 여부인데 정부는 이에 대해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며 준비기구는 이를 허용해야만 오히려 청소년관객 보호가 실현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정신도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개정 영화진흥법안은 1997년 상반기중에는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벌써 많은 이들은 정부안이 위헌의 소지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검열 시비는 헌법재판소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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